186143254C0F049370580D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수화기를 열 번도 더 들었다 놓았다 한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버튼을 누른다. 벨 소리가 가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 엄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 엄마…” 소희니? 소희야? 수화기 넘어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그래, 소희야, 엄마야. 그렇게 엄마는 하염없이 흐느끼신다. 내 목이 딱딱해진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말은 나오지 않고 울음만 나온다. 엄마는 내게 기다림의 전부였다.

 

어릴 적 보육원 문 앞에서 일주일 후에 데려가겠다던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어린 나에게 그때의 기다림은 공포였고, 절망이었고, 충격이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열흘이 되고 또 그 열흘이 여러 해가 되면서야 나는 엄마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시절, 어찌나 서러움이 많았던지.

 

우산에 매직으로 내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 놓았음에도 비오는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내 우산을 훔쳐갔다. 비 맞는 건 괜찮다. 옷이 젖는 것도 괜찮다. 문제는 수치스러움이다. 차라리 수업 마치는 하교 길이면 괜찮을 텐데, 등교 길에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학교를 가는 건 열 살배기에게는 매우 큰 수치스러움이었다.

 

그래서인가 보다. 나는 아직도 쓸데없이 우산 사는 습관이 있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어김없이 우산들이 숨어 있다. 그렇게 여기저기 우산이 많이 보여야만 나는 마음이 편하다. 아마도 그건 그 시절 상처의 일부 흉터일 것이다.

 

그때는 얼마나 절박하게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나는 어릴 적 책벌레였다. 어쩌면 책 읽는 순간만이라도 배고픔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늘 종대 앞에 앉아서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을 기다리며 책을 읽곤 했다. 땡땡 땡땡.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다. 중고생들에게는 큰 그릇의 밥공기가 놓여지고, 미취학 아이들에게는 제일 작은 공기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에게는 종간 크기의 공기가 놓여지지만, 운이 없으면 작은 공기에 밥이 놓여지기도 한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눈을 감고 식사기도 노래를 한다. 그러면 그 사이에 밥그릇이 놓여진다. 나는 눈도 감고 노래도 하지만 속으로는 애타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작은 밥그릇이 놓이지 않게 해주세요. 노래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내 앞에는 작은 밥그릇이 놓여져 있다. 나는 눈물이 핑 돈다. 이 그릇의 밥은 다 먹어도 안 먹은 것처럼 배가 고픈데. 하기는 그 시절 그곳에서 나만 그렇게 기도를 했겠는가.

 

그 배고픔과 서러움의 상처들이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내 속을 치밀고 올라온다. 나는 기어이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고 만다. 엄마! 엄마 날 왜 버렸어? ? 왜 버렸냐고! 소희야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엄마라고 너 그렇게 보내고 편히 살았겠니? 나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 어쨌든 날 버렸잖아! 나도 엄마도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나는 그때까지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날 버렸지만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음을 어린 나이였음에도 알았기에 나는 엄마를 용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힘들게 연락처를 알아내 내게 연락한 엄마에게 매정하게 연락하지 말라며 전화번호도 바꾸고 이사도 해 버리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했다. 나는 참 모질고 독했다. 하지만 모질고 독해서가 아니라 가슴이 너무 아파서 그렇게 해야만 견딜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아픈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참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도 절박하게 항해하던 내가 하나님이라는 등대를 만났다. 그랬다. 그때 만난 하나님은 난파선 같았던 내게 희망의 등대였고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이유였다. 참 많이도 울었다.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이 그저 감사했고, 처음부터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었음이 날 감동하게 했다. 내가 아팠던 것보다 더 아프셨을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조금씩 따뜻하게 변화시키셨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나로 하여금 엄마를 되뇌이게 했다. 평생을 보지 않으리라던 독한 마음이 나 이상 고통스러웠을 엄마의 고통이 되어 내 명치를 아프게 했고, 그 아픔이 엄마에게 다가서는 용기로 나를 이끌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서야 비로소 엄마에 대한 내 미움과 원망과 분노가 엄청나게 컸음을 알았다.

 

얼마나 울부짖고 얼마나 비수의 말을 엄마에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얼음장 같던 내 속이 그렇게 하염없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만신창이 같던 내 상처들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어지고 있음을.

 

그 상처들이 있던 자리 구석구석을 비집고 하나님은 거기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뿌려 주셨다. 이제는 내 몫이다. 용기를 내고, 희망을 갖고, 내 하나님처럼 사랑하며 살려고 한다. 부족함 많은 내가 늘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출처: 시조, 글/소희  (필자의 부탁으로 가명을 사용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