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구실로 한 제자가 방문했다. 8월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주례를 부탁한다는 용건과 함께. 평소 큰 키에 체중이 110㎏이 넘는 거구를 자랑하던 이 친구가 그날따라 무척 날씬해져서 미남으로 보였다.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하여 사연을 물었다. 

평소 사랑하던 신부 될 사람에게 지난해 말 청혼을 했는데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단다. 뚱뚱한 남자, 자기관리를 할 줄 모르는 남자와는 결혼할 마음이 없다는 매몰찬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청혼을 거절당하며 들은 이 말 한 마디에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 충격을 받고 이 친구는 그날부터 3개월간 매일 3시간씩 운동하고 땀 흘리며 다이어트를 해서 마침내 42㎏을 감량했다. 자신감과 용기를 얻은 이 친구가 다시 올 봄 청혼을 하게 되었고, 결과에 감동한 예비신부는 마침내 청혼을 받아줘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110㎏의 거구가 3개월 동안 42㎏을 감량해 68㎏의 날씬하고 잘 생긴 청년으로 내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놀라움과 감동으로 “그래 주례를 서주마!”라고 답하고 말았다. 평소에 주례를 극히 사양하던 내 습관과는 다르게 말이다. 

사랑의 힘은 기적을 낳는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요 기적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의 변화를 믿는다. 변화하지 못하는 많은 인간들 틈에서도 사람은 반드시 변할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상담에 임한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랴. 우리가 알듯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고 합리화하고 구실을 붙여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변화보다는 “여기가 좋사오니”를 부르짖는 것이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속성이 아닌가. 

변화보다는 안정, 불안한 미래보다는 확보된 익숙함과 현실 안주를 선택하고 싶은 것이 바로 우리 안에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죄성이 아닌가 싶다. 심리치료자인 스캇 팩은 이런 속성이 인간의 게으름이라 지적하고 이 게으름의 습관이 모든 인간 문제의 핵심과 뿌리를 이루는 심리학적 원죄라 말한 바 있다. 이 원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스캇 팩은 자기훈련과 은총의 도우심이라 역설한다. 무조건 자기를 부정만 하는 금욕이 아니라 참되게 자기를 사랑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해 자기를 넘어서려는 자기훈련과 자기극복의 결단과 노력,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한없이 현실 안주에 길들어 있는 게으른 자신의 모습을 넘어서려 땀 흘리며 눈물 흘리는 모습의 자기훈련만이 인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변화에는 자기훈련만으로는 2%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을 채워주는 힘이 바로 하늘의 은총이 아닌가 싶다. 자기훈련과 하늘은총의 개입에는 모두 사랑이란 변수를 요청한다.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사랑, 누군가에 대한 사랑, 어떤 목적이나 이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눈물과 땀을 흘리게 하고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넘어서서 더 큰 무엇을 만들게 하고 변화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 정석환교수(연세대 신학과 학장)


- 출처 : 국민일보